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셜 제도 (문단 편집) == 역사 == [include(틀:오세아니아의 역사)] 1520년대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해 처음으로 섬들의 존재가 유럽에 알려졌고 이후 1788년에 섬을 방문한 영국의 선장, 존 마셜에게서 이름이 지어졌다. 19세기 중반부터 독일의 기업들이 코프라 사업에 관심을 가지며 마셜 제도에 진출했고 마셜 제도 내의 코프라 무역의 이권을 독점했다. 1870년대 독일이 통일되자 기업들이 기업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마셜 제도를 식민지화할 것을 정부에 요청했고, 당시 마셜 제도의 카부아 대추장도 독일의 합병을 지지해 1885년 독일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독일은 독일 회사인 잘루이트에게 맡겨 관리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게 점령당한 후 [[국제연맹]]의 양도 아래 [[남양군도|일본의 위임통치를 거쳐]] 1947년 부터 UN의 위임을 받아 [[태평양 제도|미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2차 대전 태평양 전역의 주요 전장 중 하나로, 43년 하반기 이후 종전시까지 미국 태평양해역군의 주요 진격로였던 길버트 제도 → 마샬 제도 → 마리아나 제도 → 류큐 제도(오키나와)의 중간 목표였다. 그 외에 [[비키니섬 핵실험]]으로 유명한 [[비키니 섬]]과 에니웨톡 섬이 이 나라에 있다. 1946년에 미국은 비키니 환초에서 첫 원자 폭탄 실험을 시작했고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다. 1946년부터 58년까지 '''12년 동안 67번'''의 핵실험이 있었는데 이 결과 3개의 섬이 없어졌고 많은 섬이 일부 파괴되었으며, 주민은 만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가히 미국판 [[세미팔라틴스크]]라 할만 하다.[* 게다가 이 핵실험을 진행하고 남은 폐기물은 제도 내 몇몇 지역에 묻어두고 시멘트로 덮어뒀는데,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올라오면서 지표면이 잠기게 되면 사실상 뚜껑만 덮어뒀던 이 지형에 묻힌 폐기물이 태평양에 흘러들어 방사능을 태평양에 뿌리게 될 예정이다. 2023년에 들어선 이미 해수면이 맞닿아 있는 상황이다.] 1973년 마셜 제도는 미크로네시아 의회에서 탈퇴하고, 독립 운동을 시작해 1979년 독립했다. 1986년부터 연방 조약을 통해 미국에게 외교와 국방 정책을 맡긴 부분 독립 공화국이 되었으며 1990년에 국제적으로 독립을 인정받았다. 미국의 핵실험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은 마셜 제도는 마침내 2014년 4월 24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핵무기를 가진 9개국[*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을 군비축소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제소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핵 군축을 위한 노력을 이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32&aid=0002469894|#]] 그러나 심리 대상이 안되기 때문에 ICJ가 판단을 내리지 않은 채 종료하였다. [[http://m.news.naver.com/read.nhn?oid=001&aid=0008732157&sid1=104&mode=LSD|#]] 2022년 8월 15일, 마셜 제도의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늘어나 의료 붕괴 우려가 나왔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6278610?sid=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